맥주 한 캔쯤은 냉장고 구석에서 멀뚱히 있을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. 작은 유리볼에 땅콩 속껍질을 비벼 떨어트리다가 문득 생각이 났다. 그리고 곧 그 묘한 이질감에 역한 기분이 되었다. 얼굴은 잘 기억하는 편이다. 목소리도 잘 기억하고 잘 구분하는 편이다. 둘 다 생생하게 떠오르는데, 따로 떨어져 번갈아가며 떠오른다. 이어지지 않는다. 바래져 바스라진 것이다. 냉소조차 떠오르지 않는다고 관찰하고 있는 것은 여가시간이기 때문일 것이다. 적당히 쓱쓱 공간을 메꾸는 시간. 몇 년 만에 마신 맥주는 상상한대로 땅콩과 어울렸고, 심장이 싸해지는게 조금 후련했던 것도 같다. 아, 하지만 역시나 배가 불러서 동생과 나눠마시고도 한 캔을 채 비우지 못했다. 맛있는 땅콩이 굴러들어와 또 다음 맥주캔을 따는 건 언제쯤일까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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